[박욱주 교수의 기독교 문화비평] 21. 직업이 곧 소명인가? 인공지능 시대에 다시 묻는 칼뱅의 가르침 국민일보 2026-03-25 일자
 박욱주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칼뱅은 직업소명설(doctrine of vocation)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기독교 강요’ 3권 10장 6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이 삶의 모든 행위에서 자신의 소명을 바라보도록 명하신다… 사람은 하나님이 모든 일에서 자신의 인도자이심을 알게 될 때, 염려와 수고, 고통과 여러 짐으로부터 적지 않은 위로를 얻게 된다.” 칼뱅은 성직자나 왕족, 귀족 정치지도자들만이 특별한 소명을 받는다고 보았던 중세 가톨릭교회의 전통적 엘리트주의 소명관을 거부했다. 대신 그는 당대에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았던 이들, 특히 수공업 기술자나 육체노동자들까지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아래 각자의 분깃만큼 선한 직업적 소명을 부여받았다고 가르쳤다. 소명의 평등을 강조한 칼뱅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사상이었다.
칼뱅의 소명론은 막 태동하던 서구 초기 자본주의의 정신과도 일정 부분 맞물렸다. 이 점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분석한 바 있다. 베버에 따르면 칼뱅으로부터 이어진 개혁주의 및 청교도 전통의 소명론은 세속 직업을 신앙의 의무 영역 안으로 편입시켰고, 그 결과 직업적 성실성과 노동윤리를 강화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물론 베버의 이론은 20세기 초(1904년)에 제시된 것으로 오늘날의 학문적 관점에서 보면 여러 한계를 지닌다. 특히 칼뱅의 소명론이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도용되었다는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그렇다.
사실 칼뱅이 소명론을 통해 의도했던 것은 자본주의의 윤리를 정당화하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모든 건전하고 선한 노동과 헌신을 교회 공동체의 울타리 안에서 의미 있게 수용하고자 했다. 칼뱅 시대의 제네바를 비롯한 스위스 도시국가들은 각각 독립된 경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도시들은 프랑스나 신성로마제국 같은 주변 강대국들보다 훨씬 적은 인구, 대략 1만에서 1만 5천명 정도의 시민으로 공동체 경제를 유지해야 했다. 따라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동력은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한 자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칼뱅이 수석 목회자로 활동하던 당시 제네바는 일정 부분 신정적 성격을 띤 도시였기 때문에, 도시 전체가 하나의 교회 공동체로 이해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가 자기 일을 게을리한다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 태만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봉사와 헌신을 저버리는 행위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직업소명설이 다소 기형적인 형태로 전수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속의 직업과 자본주의적 경제활동 자체가 곧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단순한 등식이 거의 아무런 성찰 없이 받아들여 지고 있다. 그러나 칼뱅의 원래 의도에 비추어 볼 때, 어떤 직업 활동이 소명의 범주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그 활동이 교회 공동체의 삶과 책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신앙 공동체와 무관하게 개인의 안락과 소비를 위해 대부분 소득을 사용하는 삶을 두고 자동으로 ‘소명을 받은 직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소득의 극히 일부를 헌금하는 것만으로 각자의 직업이 마치 신성불가침의 고귀한 소명인 것처럼 간주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왜곡된 소명 이해는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와 함께 그 허실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은 여러 직업의 소멸을 가져오며 특히 청년 세대에게 대규모 실업의 위기를 안겨주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직업소명설은 쉽게 공허한 이론으로 전락한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지 못한 수많은 청년에게 직업을 소명과 동일시하는 신학은 결국 자신들이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존재라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회 청년 공동체 안에서 이러한 생각이 은연중에 통용되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까움을 넘어 참담함을 느끼게 된다. 잘못 이해된 신학이 교회 내부에서 직업 안정성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계급 갈등을 낳고, 결국 많은 이들을 교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이제 인공지능 시대의 한국교회가 시급히 고민해야 할 과제는 칼뱅의 직업소명설이 지녔던 본래의 의도를 다시 성찰하고 그것을 오늘의 현실 속에서 새롭게 구현하는 일이다. 교회는 세속 사회에서 주변화된 이들의 능력과 노동을 공동체 안에서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구조를 모색해야 한다.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과 같은 공동체적 경제 모델을 실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교회 안에 축적된 신뢰와 공동체적 자원을 바탕으로 교육, 돌봄, 지역 서비스, 공공적 기술 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청년과 취약계층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노동의 장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직업소명설은 더 개인의 성공을 미화하는 신학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책임과 연대의 신학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박욱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했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좁은문은혜교회 목사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출처] - 국민일보[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29578977&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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